
2003년 개봉 당시엔 관객수 10만 명 남짓으로 큰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진가를 인정받으며 ‘한국 영화의 르네상스’ 시기의 숨겨진 명작으로 재조명받은 영화가 있습니다. 바로 장준환 감독의 《지구를 지켜라》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22년이 지난 2025년, 이 작품이 할리우드에서 리메이크되어 돌아왔습니다.
<부고니아>는 《더 페이버릿》, 《가여운 것들》로 독창적인 연출력을 인정받은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엠마 스톤, 제시 플레먼스, 에이단 델비스 등 쟁쟁한 배우들이 힘을 보태면서 주목받고 있죠.
원작을 본 입장에서 이번 리메이크는 어땠을까요? 그리고 이 영화가 담고 있는 숨겨진 의미는 무엇일까요?



작과 리메이크, 키치 vs 드라이한 감성
《지구를 지켜라》는 당시 시대상을 투영한 다소 거칠고 정신없는 전개와 키치한 스타일, 블랙코미디, 사회 비판적 메시지가 조화된 독특한 영화였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그 과함이 지금에 와서는 ‘뉴트로’로 재해석되며 매력을 배가시키고 있죠.
반면, <부고니아>는 란티모스 특유의 건조하고 이성적인 연출이 돋보입니다. 블랙코미디 요소는 덜하고, 잔혹함이나 감정의 폭발보다는 냉철한 시선이 중심입니다.
두 작품은 분명 같은 뼈대를 공유하지만, 완전히 다른 분위기의 영화라고 봐야 합니다.



테디의 망상인가, 진실인가?
《지구를 지켜라》의 병구처럼 <부고니아>의 주인공 테디 역시 현실을 도피하기 위한 자기합리화의 세계에 빠져 있습니다.
그는 “외계인에게 납치된 여자(미쉘)를 구해 지구를 지킨다”는 사명을 지닌 양봉업자입니다.
하지만 양봉업이라는 생계가 무너지고, 택배 포장 노동자로 전락한 그는 미쉘의 회사가 벌의 군집 붕괴 원인이라 믿으며 분노를 투사합니다.
여기서 벌과 인간, 그리고 믿음의 허구성을 엮는 영화의 메타포는 명확해집니다.



부고니아의 숨겨진 신화와 비유
‘부고니아’는 고대 신화에서 부패한 시신에서 벌이 태어나는 기적의 탄생의식을 의미합니다.
이는 죽음을 통한 새로운 생명의 순환, 믿음이라는 이름으로 합리화된 폭력을 상징하죠.
미쉘의 존재는 마치 구원자 그리스도처럼 등장하지만, 영화는 끊임없이 그녀가 과연 진짜 구원자인가? 아니면 또 다른 탐욕의 화신인가? 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파괴의 결말, 그것은 평화인가?
결국 영화는 인간을 제거함으로써 지구가 평화로워졌다는 결론으로 마무리됩니다.
벌들이 다시 날고, 인간은 널브러진 채 조용해진 지구. 이는 한편으론 해피엔딩 같지만, 동시에 인간이 만든 모든 노력조차 무의미하게 만들어버리는 블랙 유머이기도 하죠.
"인간 없는 지구가 진정한 평화일까?"
이 질문 앞에서 관객은 갈등하게 됩니다. 란티모스는 늘 그렇듯, 어느 편에도 서지 않습니다.



배우들의 연기와 연출의 조화
엠마 스톤은 란티모스 영화에서 이미 여러 차례 강렬한 인상을 남긴 배우입니다. 이번 <부고니아>에서도 냉철하고 이중적인 미쉘 역을 완벽하게 소화했습니다.
제시 플레먼스가 연기한 테디 역시 실제 존재하는 인물처럼 생생하게 다가오며,
에이단 델비스는 실제 자폐 스펙트럼 특성을 반영하여 ‘돈이’ 캐릭터를 섬세하게 그려냅니다.
여기에 카우카, 더 페이버릿 등에서 음악을 맡았던 팬드릭스 음악감독의 불협과 긴장을 유도하는 음악이 결합되어 몰입도를 극대화합니다.



정리하며
《지구를 지켜라》라는 맥시멀리즘의 키치와
《부고니아》라는 트렌디하고 차가운 드라마.
어느 쪽이 더 나은 작품이라고 말하긴 어렵지만,
두 편 모두 지금 이 시대의 불안, 허무, 인간성에 대해 다른 방식으로 질문을 던지는 명작이라는 점은 분명합니다.
여러분은 이 영화를 어떻게 보셨나요? 댓글로 자유롭게 의견 남겨주세요.
부고니아 예고편 보러가기















































